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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RTLAB DAEJEON : June, Lee Ji Hye

보이지 않는 것을 조명하다

        

이지혜는 빛을 매개로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작가의 첫 개인전이기도 한 작품들에는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주제가 담겨 있으리라 믿는다. 이 전시에서 빛은 중성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띄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다섯개의 작품들을 존재의 연쇄로 만든다. 존재의 연쇄 망은 근대가 텅 비워 놓은 공허한 공간을 다시금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 흩어져 있는 것을 다시 연결하는 행위 또한 종교적 충동의 산물이다. 이지혜의 많은 작품에 작동되는 상호작용성은 연결짓는 행위를 관객에게로 확장한다. 작품들은 관객이 관심을 보이면 대답하듯 반응하는데, 이때 빛이 주요한 매개가 된다. 작가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빛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을 밝히고 드러내며 항상 어둠을 이긴다. 나에게 빛은 믿음이고 소망이며 사랑이고 생명이다. 나는 빛을 통해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작가노트) 이야기한다.

종교적 영감으로 충만한 작품들은 통상적인 미디어 아트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희성과 화려함 대신에, 간결하고 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특정 종교가 아니더라도, 기도 및 묵상 같은 깊은 몰입적 행위는 현대문명의 수다스러움을 걷어내고 본질과 마주하게 할 것이다. 기도와 묵상을 닮은 간결하고 정적인 작품들은 재미에 가려 의미가 축소되지 않도록 한다. 빛은 오감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조형예술가는 시각이라는 감각에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각의 역설을 잘 인식할 수 있다. 스펙타클의 시대, 수많은 보이는 것들은 우리를 진정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그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그저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동어반복과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또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지를 회의한다. 즉 동어반복에 기초하는 형식주의 논리를 거부한다.

이지혜의 작품에는 어떤 대상을 깊이 조명하는 주체가 있다. 이러한 주체는 종교적이다. 기독교에서 신의 가장 큰 선물은 주체라고 말해진다. 그래서 신이 죽었다고 말해졌던 시대에 인간의 위상 또한 의심되었으며, 미디어가 더욱 발달하고 있는 현재, 신 이후, 인간 이후(post-human)에 대한 사고 또한 의식적, 무의식적 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 전시에서 다루어지는 빛은 예술의 기원인 종교, 종교보다 더 오래된 자연에 널리 걸쳐 있는 것이다. 마침 전시가 열리는 계절은 신록으로 푸르러 빛이 생명의 근원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빛을 머금을 수 있는 자연의 화학 공장인 엽록소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음으로서, 빛과 다른 생명체들의 매개고리가 된다. 우주에서 대형 운석이 떨어져 그것이 일으킨 먼지 폭풍이 태양을 가려 생겨난 긴 빙하기로 공룡이 멸망했다는 설도 있는 만큼, 빛을 생명과 동일시하는 사고는 큰 무리가 없다.

한 생명체가 죽으면 먼저 눈의 빛이 사라진다. 죽음은 기()가 빠져나간 물질의 상태를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태양도 일찍이 신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신학적 사고에서 빛과 어둠을 가르는 행위는 창조자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변하는 상징이다. 전기의 발명으로 빛이 없는 암흑을 정복했을 때도 빛은 또 다른 차원에서 삶의 경외감을 상징하는 미디어로 거듭난다. 이지혜가 전공한 미디어 아트 분야의 작품들은 보통 전기로 구동된다. 통상적인 미디어 작품에는 폭죽놀이와도 같은 화려함이 깔려있다. 많은 자본과 기술이 집중하는 흥행몰이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터라, 미디어 아트는 대개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취급을 받는다. 회화나 조각은 그러한 화려한 스펙터클과의 경쟁에서 면제(또는 소외)받는 경향이 있지만, 비슷한 도구를 쓰는 미디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가속도를 붙여가는 기술의 진보에 맞춰 시시각각 업데이트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물론 예술성과 대중성이 잘 결합 된 훌륭한 예도 적지 않지만, 개별 작가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작은 기회도 충만하게 채워야 하는 것이 예술의 훌륭한 전략이다. 단순한 기술을 사용하는 이지혜의 작품들은 대부분 마주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지만 인간적 차원은 유지된다. 작품 [The roots]는 마치 거울처럼 보는 이를 되비쳐 준다. 그러나 관객이 이 수수께끼같은 대상에 관심을 표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거울은 유리가 된다. 유리 안에는 복잡한 굴곡을 가진 나무뿌리가 모터에 의해 돌아간다. 평소에는 거울이고 밝아지면 유리로 바뀌는 하프 미러는 극적 변화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뿌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적 관심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난다. 감춰져 있는 생명의 근원을 드러내는 것은 주체의 관심이다. 거울 뒤에 감춰졌다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뿌리는 인생을 비롯한 굴곡진 삶을 반영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겨난 기이한 형태들은 강한 실재감을 준다. 자연의 산물인 인간은 결코 자연이라는 실재를 부정할 수 없다. 거울 혹은 유리 안의 대상은 단순한 주관적 환상이 아니라, 은폐된 객관성이 드러난 것이다. 천국을 비롯하여 보이지 않는 차원을 다루는 형이상학적 사고는 객관적 실재를 가정한다. 반면 정보화 사회를 물적 토대로 삼는 포스트 모던 문화는 모든 것을 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작품 [초승달]은 캔버스에 그려진 끊어질 듯 가느다란 초승달이지만, 다가서면 둥근 빛이 새어 나와 보름달처럼 환하게 변한다. 그것은 감춰져 있지만 실재하는 것을 말한다. 원을 품고 있는 초승달은 연약함과 동시에 충만과 소망을 암시한다. 물론 보름달은 그믐달이 되고 다시 초승달이 되겠지만, 그 주기적인 변신은 완전히 죽지 않고 다시 부활한다는 희망을 내포한다. 작가가 선택한 식물과 달은 질베르 뒤랑이 의미하는 인류의 상상계에서 부활에 대한 생각을 가능하게 한 대표적인 자연물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른 감춰진 본질에 대한 사유는 문명사회에도 확장된다. 작품 [아파트]는 아파트 창을 암시하는 균일한 크기의 하프 미러로 된 사각형들에 다양한 빛의 상태를 연출함으로서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비춘다. 작가는 인간을 등장시킴 없이 인간적 삶을 은유한다. 흐릿한 창은 있어도 완전히 꺼져있는 창은 없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 [중심]우리 모두의 중심에 있는 빛을 흔들림으로부터 방어하고자 한다. 공중에 매달린 아크릴 막대를 통해 전달되는 빛은 초점이 맞을 때 중심에서 가장 환하게 빛난다. 작품 [동행]은 긴 삶의 여정을 은유하는 수많은 아크릴 조각들로 이루어져 그 앞을 지나는 관객의 발걸음마다 빛이 따라오는 듯이 연출한 작품이다. 관객의 위치를 인식하는 카메라에 의해 켜진 조명은 여로에 정렬한 아크릴 조각들을 통해 새어 나오게 된다. 동행이라는 제목은 짧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여기에서 빛은 하나의 기원을 가지기 보다는 편재한다. 그것은 빛이 나와 함께 하는 경험을 전달한다.

막스 야머는 [공간개념-물리학에 나타난 공간이론의 역사]에서 네가 어디에 가든지 너의 신이 너와 함께 있다고 적혀있는 [탈무드]를 인용하며 신의 편재(omnipresence)를 말한다. 신학적 사고에서 공간과 신은 연결되며 공간을 채우는 것은 빛이 된다. 공간 이론의 역사는 공간과 빛을 같게 여긴 전통을 소개한다. 공간을 빛과 같게 여기는 전통에서 빛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모든 것에 침투하는 힘이고 존재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간주된다. 막스 야머에 의하면 선사시대로부터 빛은 초자연적 힘들을 상징했는데, 신의 모든 형상을 금지하는 성경조차도 빛 원소를 신이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매체로 여전히 사용한다고 한다. [신약성서]에서 신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한다. 이지혜의 작품은 빛을 신으로 삼는 전통 또는 빛을 형이상학적으로 신에게 이르는 길로 간주하는 전통과 관련된다. 이러한 전통은 전기의 시대에도 이어진다. 이지혜의 작품은 미디어 아트라는 현대적 수단으로 오래된 전통과 접속한다.

 

 

 

이선영(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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