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예정
이응노는 1962년 5월 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렸던 파리 첫 개인전에서 꼴라주 연작을 주요작으로 선보였다. 그는 파리에 정착한 초기에 신문과 잡지를 오려 붙이고 색을 칠하는 방식의 종이 꼴라주 작업에 몰두했다. 15점의 꼴라주 작품을 선보인 파리 첫 개인전 제목은 <응노 리, 꼴라주 Ung-No Lee, Collages>였다. 개인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꼴라주는 이응노의 초기 파리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작가의 현대성과 실험성을 보여준 중요한 예술적 성취였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입체파 작품에서 처음 꼴라주를 시도했고 이를 통해 평면 위에 깊이감을 표현하려 했다. 이외에도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거나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또는 예술의 탈권위화를 위해 꼴라주 기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응노 역시 이런 전통에 일부 기대고 있지만 이보다는 순수한 시각적 효과를 위해 재료의 질감과 색채에 더 주목했다는 점에서 기존 경향과 차별화된 꼴라주를 시도했다. 1960~62년 꼴라주는 종이를 밀집시키듯 오려 붙여 밀집된 화면을 구성했고 신문과 잡지의 컬러 인쇄면을 찢어 붙이거나 한지를 붙여 먹을 입히기도 했다. 마치 프랑스 앵포르멜 회화의 두껍게 올린 캔버스 표면, 즉 ‘오트 파트(hautes pâtes)’와 유사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순수 추상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응노는 서구 조형언어를 구사하는 동시에 자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추상을 창작하게 되는데 지필묵과 같은 한국적 재료를 사용해 새로운 표현을 추구했다. 한지만이 가능한 농담 표현과 수묵의 느낌을 덧입혀 서양적 기법에 한국적 감성을 더했다. 1963년 이후에는 문자의 형상이 꼴라주 양식과 합쳐지며 작품의 주제가 문자추상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 전시는 이응노의 추상 창작의 모태가 되었던 꼴라주 작품을 조명하기 위해 1960년대 초 꼴라주 작품을 중심으로 삼고 70년대까지 폭넓게 실험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서정적 추상, 쉬포르-쉬르파스 등 20세기 중반 파리와 뉴욕의 추상미술 흐름 속에서 이응노의 예술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을까? 꼴라주 연작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