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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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세계

고암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입니다.

1920 - 50년대

이응노 사진 20대 이응노의 모습
젊은 이응노 전신 1930년대 전부 시절의 이응노
책:동양화의 감상과 기법 1956년에 출판한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 표지

1922년 해강 김규진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를 배우며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 1924년 21살이 되던 해 제 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청죽 晴竹>으로 입선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일본 남화의 대가인 마쓰바야시 게이게쓰의 덴코화숙(天香畵塾)에서 수학했으며,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와 혼고양화연구소(本鄕洋画硏究所)에서 동·서양회화를 공부하는 등 현대적인 미술교육을 받았다. 1945년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는 장우성, 이유태, 김영기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해 왜색 청산을 통한 한국미술의 정통성 회복 운동을 벌였다. 이응노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서울에 고암화숙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에도 출강했다. 1956년에는 동양화 기초를 해설한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을 출판했다. 이 시기 이응노의 화풍은 전통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나 사물을 사실주의적 시각에서 탐구한 현실적 풍경화가 주를 이루었다. 동시에 구상에서 벗어난 반-추상, 추상 작품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작품

이응노 - 풍경 <풍경>, 1950. 한지에 수묵담채, 133x68cm
이응노 - 풍경 <풍경>, 1950. 한지에 수묵담채, 133x68cm
이응노 - 풍경 <풍경>, 1950. 한지에 수묵담채, 133x68cm
이응노 - 생맥 <생맥>, 1950, 한지에 수묵담채, 133x68cm

1960년대 파리 시절

1959년 독일 뮤젠호프클럽 하우스 개인전 1959년 독일 뮤젠호프클럽 하우스 개인전
1962년 파리 폴 파케티 화랑 첫 개인전 1962년 파리 폴 파케티 화랑 첫 개인전

이응노는 1956년 프랑스 평론가 자크 라센느의 초청을 받은 후 1958년 만 54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서독에서 1년 간 체류하며 본, 쾰른,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전 및 박인경 화백과의 부부전을 열었다. 이 당시 이응노는 대상의 사실적 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추상적 표현’이라고 언급한 실험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독일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응노는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이었던 ‘앵포르멜(informel)’ 회화 양식을 흡수한 후 전통 필묵과 결합해 동양적 감수성이 가미된 새로운 추상을 창작했다. 1962년에는 ‘앵포르멜’ 운동을 견인했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체결해 안정적인 작품 창작기로 들어서게 된다. 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에서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추상 작품을 대거 선보였으며 자크 라센느를 비롯한 당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이후 이응노는 파리를 중심으로 독일, 미국,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그리스, 영국, 일본, 한국에서 개인전과 그룹전 각각 50여회를 열며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1960년대 콜라주 작품

이응노 : 구성 <구성>,1962. 캔버스 천 위에 종이 꼴라주, 77x64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61, 천 위에 한지 콜라주, 116×89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62, 캔버스 위에 종이 콜라주, 64x75 cm

파리동양미술학교(L’Acadé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

프랑스 학생에게 동양화를 가르치는 이응노 화백 프랑스 학생에게 동양화를 가르치는 이응노 화백
1971년 세르누시 미술관에서 열린 <파리동양미술학교> 전시 개막식 1971년 세르누시 미술관에서 열린 <파리동양미술학교> 전시 개막식

1964년 61세의 이응노는 세르누시 미술관장 바딤 엘리세프와 함께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한다. 정기적인 사생과 수업을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동양화의 기초를 가르치고 동양미술의 아름다움을 유럽에 전파했다. 설립 후원자로는 파리 문화계의 인사들 알바르(Alvard, 미술평론가), 아르퉁(Hartung, 화가), 카임(J. Keim, 역사가), 라센느(J, Lassaigne, 평론가), 술라쥬(Soulages, 화가), 창대치엔(Chang Dai Chien, 화가), 쥬린(Chou Ling, 철학박사), 후지타(Fujita, 화가), 이희승(Li Hi Soung, 언어학자), 매이 츄(Mei Thu, 화가), 창(K. Tchang, 철학자), 자오우키(Zao Wouki, 화가)가 참여했다. 1978년에는 동양화 교습서 「수묵담채화법: Ungno Lee, L’art de Peindre à l’encre de Chine」를 발간했다.

1960년대 문자추상 작품

이응노 : 구성 <구성>, 1962. 캔버스에 오일, 133×70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64, 캔버스에 채색, 88 x 57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64. 한지에 먹, 130 x 67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68. 한지에 수묵담채, 140 x 71cm

1970년대 : 시련과 도약의 시기

작업실에서 가족, 지인들과 함께 작업실에서 가족, 지인들과 함께
1971년 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포스터 1971년 폴 파케티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포스터
1973년 스위스 미학자 자키야르와 함께 저술한 <서체, 동양화 그리고 추상미술> 표지 1973년 스위스 미학자 자키야르와 함께 저술한 <서체, 동양화 그리고 추상미술> 표지

1967년 이응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루었다. 옥중에서도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 3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1969년 사면 된 후 프랑스로 돌아와 1969년 판화집 「옵셋 offset」 제작, 1970년 프랑스 사블르 미술관 개관전에 참여해 해변에 탑 조각 설치, 프랑스 국립 모빌리에 박물관과의 타피스트리 작업, 세브르 국립도자공장과의 도자 작업 등 회화 이외에도 조각, 모빌리에, 세라믹 분야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프랑스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미국에서 크고 작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문자추상 작업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특히 1970년대 문자추상은 서체의 부드러운 흐름에서 벗어나 건축적으로 단단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문자추상 양식을 심화시켰다.

1970년대 작품

이응노 : 구성 <수(壽)>, 1972. 한지에 먹, 콜라주, 274×132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70. 한지에 솜, 120 × 65cm
이응노 : 옥중화 <옥중화>, 1968. 한지에 먹, 간장, 130×33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72, 융 위에 채색, 220x167cm
이응노 : 구성 <구성>, 1974, 종이, 52 x 20 x 16cm

1980년대 : 이응노와 군상

1981년 작업 중인 이응노 화백 1981년 작업 중인 이응노 화백
1989년 세르누시 미술관에서 열린 이응노 추모전 도록 표지 1989년 세르누시 미술관에서 열린 이응노 추모전 도록 표지
1988년 뉴욕의 브루노 파케티 갤러리에서 열린 이응노 회고전 도록 표지 1988년 뉴욕의 브루노 파케티 갤러리에서 열린 이응노 회고전 도록 표지

이응노의 작품에서 인간의 형상은 항상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 추상화 속에서 발견되는 자연 속의 인간, 인간의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한 70년대의 문자추상 시리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붓놀림과 서체와 융합되어 독특한 패턴으로 변화해 갔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하기까지 제작된 ‘군상’ 연작은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는 이응노 예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1월 이응노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 세즈’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파리, 뉴욕, 서울, 도쿄, 오사카 등지의 갤러리에서 추모전이 열렸다. 이응노의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의 퐁피두 센터, 국립장식미술관 및 스위스, 덴마크, 이탈리아, 영국, 대만,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 소장되어 있다.

1980년대 ‘군상’ 작품

이응노 : 군상 <군상>, 1986, 한지에 먹, 167 x 266cm
이응노 : 군상 <군상>, 1988. 한지에 먹, 130×7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