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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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예정

이응노미술관 예정전시 내용을 소개합니다.
2019 아트랩대전 : 10월의 작가 김영웅

김영웅  - 땀땀의 질서(DDamDDam’s Rule)

 

 

황찬연(이응노의집 학예연구사)

 

 

꼬물꼬물, 스멀스멀, 한 땀 한 땀, 지그재그..... 작고 가는 간지러운 선들이, 깨알만 했다가, 콩알만 했다가, 꽃잎같이 봉오리 맺히다가, 이끼같이 넓게 퍼져나간다. 무심결에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가만 들여다보면 여러 겹의 바느질로 정성스레 누비었던 흔적들이 화면 위에 가득하다. 괜스레 눈길을 사로잡는 덩어리들이, 굵직한 선들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캔버스를 메워 나간다. 때론 신체의 표피 또는 지문 같은 패턴들이, 때론 수면 위를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오브제 표면의 결을 따라 한 발 한 발 제각각의 위치를 점유해 나아간다. 형상을 따르지 않는, 형상을 빚어내지 않는 선들이, 면들이, 덩어리들이 서로에 의지한 채 기묘한 긴장감을 발생시키며 공간을 점유해 나아간다.

 

<땀땀의 질서>라 명명한 이번 전시에서 작가 김영웅은 현재까지 자신이 만들어온 모든 종류의 콜라주 작품들을 그러모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과 비정형적 형태들로 아상블라주(assemblage) 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형태와 이질적 오브제들이 결합된 독특한 형식을 갖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들, 점들, 형태들 모두가 작가의 취사선택에 의해 주변의 환경에서 채집된 풍경-사람-사물들의 흔적 또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흔적과 자신의 흔적, 타인의 흔적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채집하고 기록한다. 패턴을 따르는 듯 패턴을 벗어나고, 형상을 이루는 듯 형상을 벗어난다. 작은 조각보 같은 오브제들이 쌓이고 겹쳐지며 불완전한 형태를 지속적으로 생성발전시키고 있다.

 

땀 흘려 한 땀, 한 땀 수놓은 다중의 작품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공간에 모여 전혀 다른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체적인 방향을 생각하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보여주며, 그리고 이것들이 구성되어 어떠한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지 실험하고자 합니다. 김영웅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땀땀이들(생명력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시간을 가지고 촘촘히’, ‘구석구석바라봐 주기를 소망합니다.” (작가노트)

 

작가 김영웅의 시선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매몰되기 쉬운 재현의 법칙, 인식의 합리성을 따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그 형상을 이루는 선들과 그 속에 내재된 무한한 선들, 잠재적으로 교환 가능한 선들의 상호 가능성에 머문다. 작가는 전통적으로 대상을 입체화하는 방식, 습관, 인식을 거부한다. 오히려 재현에 대한 인식, 평면의 입체화라는 회화의 기만적 기술을 비틀고 해체함으로써 그의 회화 세계는 점, , 면으로 캔버스 또는 공간을 부유하게 된다. 대상의 형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이루고 있는 온갖 다양한 점과 선과 면들이 세상 밖으로 풀어져 나오는 것이다.

일견, 불편한 선들, 단순하고 깨작거리는 선, 유기적 또는 비유기적인 선들, 어떠한 형상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선들의 집적 속에서 불편하고 불안한 시선은 그 자리를 계속 맴돌고 만 있다. 공허함 속으로 깊게 빨려 들어가는 의식의 부재 상태. 이것은 그가 유도해낸, 전략적으로 관객을 이끌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비의지적, 탈의지적 유희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의 비정형적 놀이를 보는 어른들이 무참하게 그들의 인식적 관습이 깨져 나감과 동시에 지어지는 신선한 미소, 그 뒤에 밀려오는 어떤 깨달음의 공백과도 같다. 관습에 얽혀 무한반복하고 있던 인식의 흐름이 툭하고 풀려버린 느낌이다.

 

작가가 관심을 두는 선들, 물감이 굳은 종이 팔레트, 오래된 책의 이물질, 옆 짝꿍이 버린 종이의 조각, 물감이 흐른 경로, 파충류의 눈동자, 다 먹은 아이스크림 통의 잔해 등 이러한 것들은 우리 주변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면서, 동시에 일반적 관심을 받는 사물들, 환경들은 아니다. 이러한 사물-환경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무엇으로부터 탈주하여 이러한 낯선-그리기 또는 만들기 방식을 선호하는 것일까? 하여 그에게 회화란 무엇인가?

 

김영웅의 작품 <또랑또랑의 순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작은 단위로 나누어 제작한 작품들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만든 설치 작품이다. 이 작은 단위들은 전시장 공간에 유기적으로 배치된 겹쳐진 면, , 점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어떠한 상호작용을 발생시키는가 관찰하려는 의도다. 제목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있어밝고 똑똑히 또랑또랑하게 떠올랐던 순간들을 모았다고 한다. 작은 단위의 작품들에는 그가 채집한 흔적들이 자리하고, 그는 그 흔적을 따라 일일이 손바느질로 잇고 꿰매고 매듭을 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오브제들(, 종이, 비닐, 스티로폼 등)을 다시금 연결하며 그 각각에 담긴 내용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한다. 마치 한 단위의 정지 장면들이 무한히 연결되며 하나의 흐름을 갖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흐름에는 어떠한 완결적 내러티브가 부재한다. 단지 상황들이 흔적들이 충돌할 뿐이다.

 

아울러 그의 독특한 발상 혹은 시선은 <촘촘히 흐르는 연기>, <물결 시리즈>에서도 나타난다. 공기 중으로 피어올라 천천히 흩어지는 연기, 그 흩어지는 연기의 색감, 매스, 감각적 느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연기를 이루고 있는 외곽의 선들을 포착하고 그 흔적이 사라지기까지 추적하여 시간성을 남겨놓는다. 그리하여 감각의 영역에서 비언어적으로 감지하게 한다. <물결 시리즈> 또한 수면 위를 끝없이 흔들리며 파생하는 빛의 흔적을 추적하되 물결의 외곽선을 채집하여 반복적으로 그려나간다. 이 작품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기록된 결과물로서 여러 겹의 층들이 쌓여 복잡한 구조를 이룬다. 이 외에도 다른 작가가 버린 그림 위에 자신의 선을 덧붙여 따라가 보거나, 바닥에 떨어진 다양한 이물질의 외곽선들을 캐스팅해서 그 선들을 겹쳐 놓고 자신의 법칙(투명한 재질 등을 겹쳐 여러 층을 만들되, 같은 층에서의 선들은 서로 비껴가기)대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 선들을 한 땀 한 땀 실로 꿰매어가며 성실하게 따라가며 비정형화된 형태들로 반복집적된 구조물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예술행위, 창작의 주된 논점을 회화적유희라 말한다. 어린아이가 앞서 제시한 사물을 가지고, 환경 속에서 변형된 작품을 설치하여 새로운 상황을 펼치는 유희극, 놀이의 장소가 그에게는 작품인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는 아카데미 교육에서 모범으로 삼는 재현의 미덕을 거부한다.

 

특정한 압박과 규칙 안에서 자유자재로 행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직관과 본능이 인도하므로 무한히 신명나게 한다. ... ... 출처를 알 수 없는, 혹은 모두 다른 생을 살아온 이질적인 그것들은 나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한계를 규정지을 수 없는살아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작가노트)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지점, 사물과 마주하는 자신과의 조우로부터 발생하는 격정적 감각, 인식의 표상으로부터 탈출한 반표상 혹은 비표상적 태도. 이것은 재현의 법칙으로부터 무한한 탈주를 꿈꾸는 감각들이며, 이미지의 영원회귀로 귀소하려는 의지, 모든 새로움을 인식의 목록 안에 가두려는 의지를 벗어나 죽음으로 치닫는 이미지를 부활시키고, 신선한 감각 그 자체로서, 그 모든 감각의 탄생 지점을 대상과의 만남 그 지점으로 되돌리기에 모든 만남은 늘 새로운 것이며 신선한 충격이 된다.

작가 김영웅이 바라는 것은 결국 예술행위에 있어 능동적 태도에서 수동적 태도로서의 전환을 추구한다. 더불어 작가의 변형된 캔버스 또는 화면, 설치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미완성의 영역에 머물게 하고 그 화면 안에서 또는 전시 공간 안에서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는 감각을, 의도치 않는, 의식하지 않는 나이브한 감각을 느끼고 보이도록 한다. 이는 오래전 관습이었던 예술은 전형적인 형상화 작업이고, 확실하게 묘사적설명적이어야 하며, 작품에 있어 의도의 명백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정언명령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완전함(완성하기)을 멈춤으로써 그 특성 혹은 가치를 발생시키려 한다. 제작 방식에 있어 기존의 관습이 가벼이 여겼던 드로잉과 바느질로 가득한 그의 작품, 재현을 벗어나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으로서의 작품은 매 순간 비한정적이며, 매 순간마다 사로잡는 어떤 것을 벗어버리는 것이며, 자신에게 속한 예술작품의 기준을 더 이상 재현의 완성에 두지 않고 자신의 실천적 행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