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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트랩대전

 

열병의 덩어리로서의 회화

 

이선영(미술평론가)

 

캐리리는 아크릴과 아크릴 스프레이, 오일 파스텔, 연필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복합적으로 사용한다. 자유롭게 그려진 것 같지만 아크릴 스프레이 같은 재료는 수정불가능 하여, 작가 말대로 섬세함과 예민함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작업에 집중해야하는 상황을만든다. 몇 안 되는 색과 재료를 최대한 다양하게 펼쳐나간다. 작가의 게임 규칙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그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게임의 수가 적용된다. 기쁨과 환희는 물론 슬픔과 고통,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자유로운 유희의 차원에서 풀어 헤쳐진다.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은 화면은 개인의 경험과 감성, 그리고 육체적 감각을 받아내는 장이다. 작품에는 무분별하게 생성된 선명한 획(stroke)과 선(line)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재현이 아닌 생성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동일자로의 환원이 아닌, 타자로의 확산이라는 현대미술의 흐름이 있다. 작가가 현대인의 징후로 진단하는 완전함에의 욕망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열병을 낳는다. 인간은 열병의 덩어리가 된 것이다.

 

작품에는 작가를 휘저었던 사건들이 반영된다. 푸른색과 검정색의 필획들이 만나 여러 사건을 은유하는 캐리리의 작품은 여러 화면으로 펼쳐졌을 때 잠재적인 시간성을 통해 사건의 흐름을 암시한다. 시원하게 휘두른 필획들은 파국적 사건일 수도 있다. 사건에는 여진도 남는다. 주요한 형상들 주변에 이를 반향 하는 또 다른 작은 형상들은 나비효과처럼 이어질 사건들의 파장을 표현한다. 검정은 선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무정형의 푸른 색조의 덩어리와 밀고 당기는 관계를 가진다. 덩어리진 채 수동적으로 떠있는 것과 운동성을 가진 필획이 공존하는 작품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캐리리의 작품은 추상적인 원근감과 촉각성이 있다. 작가는 미술사에서의 추상이 극단화시키려고 한 무중력적 시공에 회화를 매달아 놓지 않는다.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는 형태와 색조는 꿈과 무의식, 사랑과 죽음같이 모호한 영역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캐리리가 주목하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인 불완전성은 완전을 향한 여정에서 열병을 낳는 것이며, 작가의 작업 또한 이러한 열병의 덩어리(the lump of fever)’의 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