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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트랩대전

도시의 암호, 그리고 사라진 시간들

 

민희정 (미술이론)

 

기억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으면서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순간적 허상이다. 시간적 거리를 둔 하나의 공간과 마주하였을 때 앞선 시점과 뒤의 그것은 같은 대상이지만, 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주체는 기억을 단서로 부재했던 시간의 사건이나 갈등에 대한 일들에 개입하게 된다. “본질이나 형성 안에 있는 상반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무언가에 대한 차이 자체의 개념을 얻을 수 있다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고찰을 상기한다면, 시간의 벨트에서 벌어지는 차이에 대한 의식으로서 기억은 매우 부적절한 증거라는 점을 즉시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부정확한 의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기록을 남긴다고 해도 결국 대상에서 벌어지는 가느다란 변화의 이음 선을 연결해 주는 것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장동욱의 풍경 작업이 마치 시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것은 어떠한 시점으로부터 떨어진 장소를 추적하는 이유가 크다. 그는 기억이라는 세계가 현상과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의식을 기초로 이른바 시간적인 구조 위에서 현실과 함께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신념으로부터 이미지들을 전사한다. 지금껏 그 주제는 고대의 연모나 유물과 같이 오늘의 시대적 지표로서 도시라는 장소가 가지는 시간에 관한 것으로, 그는 하나의 상이 허상으로 변화해가는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다. 기억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작가는 이 상황을 초월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은유로 물들이고, 사물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장치를 곁들였다.

 

그는 2차원의 매체성을 명시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가 완벽히 구현된 창조적 공간이 아니라 환영을 동반하는 재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그것은 이미지가 결코 환영과 실제의 사이, 즉 분리되지 않는 차원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재현을 통해 기억이라는 허상이 가지고 있는 아련한 감각적 시간을 공유하려는 소통의 방식이다. 맨살을 드러내는 캔버스, 흘러내리고 번지는 안료의 효과들은 흔적이 되어버린 허상의 시간들을 불러들이는데 유효했다. 그가 시간을 들출 때 마다 이러한 효과들은 추억과 현실, 상상과 실제가 뒤섞이는 오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종종 대화에서 유머의 제스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죽음의 본능에 지배되는 것은 비단 생명을 지닌 존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장소 역시 억압과 전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무수히 부딪히는 저항, 이전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심각한 도시의 상황을 열거하는 그의 메시지들은 후퇴하는 시간들에 대한 처절함을 되살리려 한다. 작가의 사회적 의식은 참혹한 현장에 대한 고발과 같은 특정한 맥락에 놓인 문제들에 집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탈 정치화된 시간들에 대한 추적이자 이미지의 체계로 교환되는 기호에 대한 무수한 고뇌이다.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처럼 수축하는 시간 가운데서도 그의 작은 방 안의 기억이 새로운 문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