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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전시

이응노미술관 과거 전시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2021 아트랩대전 : 10월의 작가 고동환

<한 바퀴 돌면 이전과 조금 다른 자리에 있다>

 

전시장 복도에 들어서면 10개의 삼각형이 곳곳에 자리한다. 사실 삼각형보다 삼각기둥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의자처럼 앉기도 애매하고, 무언가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형태상 모퉁이나 가장자리에 놓였을 때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복도에 이리저리 배치되어 불편하고 불안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모호한 물체들은 단지 공간을 점유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전시실 내부에는 6개의 벽이 세워져 있다. 높이 180cm, 폭 90cm의 벽은 압도적이지는 않다. 그는 특정한 벽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마주한 적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벽을 구현했다. 이 벽면을 구성하는 것은 대부분 작가가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구한 것이다. 뜻밖의 장면은 바로 벽의 뒷면이다. 관람객은 전시장을 거닐며 서로 다른 벽의 앞면과 뒷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고동환은 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관람객들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전시장에 들어가 다시 나오기까지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동선을 남기며 전시를 감상한다. 관람객은 한 명의 퍼포머가 되어 이 전시에 참여한다. 벽과 사물을 마주하는 관람객 개개인의 무수한 기억이 작용하는 것이다. 

고동환은 그동안 집을 소재로 한 작업에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인간의 정체성은 공간과 관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인간에게 중요한 공간이다. 태어나서 인식한 최초의 세계이자 매일의 삶과 결부되어 있고, 꿈과 이상을 지배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내밀함을 응축하고 지켜주는 유일한 공간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집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삼각형의 지붕과 네 개의 벽으로 구성된 단순한 조형물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집에 관한 어떠한 서사도 없다. 그의 집은 개념적이고 추상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작업은 집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인 것이다. 그에게 집은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먼 대상이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경험, 잦은 이사로 집은 하나의 구조물로 경험될 뿐 실체로 와 닿지 않았다. 집에 관한 건조한 시선과 불편한 심리는 그의 작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은 내부의 존재를 즉 거주된 집 안에서 경험하는 내면성을 드러내 보인다고 말한다. 집은 하나의 우주이자 세계로, 축소화된 세계 안에 자신이 있음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는 집의 형태를 무수한 선으로 그어 채우는 드로잉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섬세하게 구축된 드로잉을 들여다보면 같은 자리를 반복하는 선은 없다. 미세한 차이와 간격으로 다른 선이 만들어진다. 선이 겹치더라도 시작점과 끝점은 다르다. 약 600쪽에 달하는 <집으로 지은 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같은 페이지 없이 다양한 배열로 채워져 있다. 

2017년 집에 관한 상반된 감정을 담아낸 <Concealed Revealed>에서 그는 캔버스의 표면을  색실로 촘촘하게 감은 적이 있다. 실은 나선형을 그리며 겹치지 않고 균일한 표면을 이루는데  그 과정을 생각해보면 바깥을 맴도는 존재일 따름이다. 이후 실은 작업에서 선으로, 단어로 변주한다. 그의 작업은 반복 속에서 무수한 변화와 차이를 이야기한다. 질서정연한 실 감기와 선 긋기, 채우기는 작가가 자신의 존재를 새기는 과정이다. 밀도 높은 노동의 흔적은 사실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작품 한 점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던 것이 여러 작품이 군상을 이룰 때 무수한 시간과 엄청난 공력은 과정을 통해 선명하게 보인다.  

드로잉에서 집의 형태는 때로 절단되거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지만 새로운 벽에 가로막혀 표면 너머 내부로 나아가지 못한다. 2019년 갤러리 도스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집 형태의 입체 조형물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드로잉의 입체 버전으로 밟으면 쉽게 망가질 만큼 연약한 재질이다. 종이로 만들어진 이것은 엄청난 밀도의 표면과 달리 내부는 텅 비어 있다. 

2020년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의 열린 전시는 그의 작업 흐름에서 새로운 변곡점에 해당한다. 외부의 시점에 머문 채 집의 외형에 집착했던 그의 작업이 이때부터 집에 관해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프리뷰전에서 선보인 <You Are (Not) Welcome>에서 그는 타인을 환영하지도, 그 자신도 환대받지 못한 풍경을 보여준다. 

또한 결과보고전 <특정한 장소의 불특정한 물체>에서 실내의 부분이나 가구를 연상시키는 물체들은 작가의 능동적인 개입으로 그 형태와 기능이 모호해졌다. 이 불특정한 물체들은 바퀴가 달려 움직일 수 있다. 그는 매일 전시장을 방문해 각 물체의 자리를 이동시켜 새롭게 배치했다. 흥미로운 점은 변화와 차이에 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그는 기존의 강박적 태도를 버리고 유연하고 비정형화된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 물체들은 관람객 누구나 옮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가 보자. 이제 그는 더 이상 집이라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은 집의 내부일 수도, 전혀 다른 공간일 수도 있다.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벽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웅변한다. 벽에 걸린 사물은 타인의 흔적을 보여주는 단서이자 가치에 따라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벽의 뒷면은 달의 뒷면처럼 고정된 자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이동해야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벽과 삼각형은 둘 다 공간의 조각, 파편, 부스러기라 할 수 있다. 벽이 몸통의 일부라면 삼각형은 지붕 또는 구석이거나 공간의 부분에 해당한다. 집으로 수렴하던 공간에 관한 감각은 내부로 더 깊숙이 파고들어 타인을 만나거나 밖으로 뻗어 나가 타인에게 가닿는다. 자신에게 열린 감각은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향한다.    

고동환의 작업은 추상화된 관계성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렇다고 거대서사나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과 일상성을 함축한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집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며, 집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매일 새로운 삶을 이어 나간다. 전시장 내부에는 6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시실 복도에는 그동안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10개의 삼각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마치 대지 위의 씨앗처럼. 

 

이슬비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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