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전시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김윤신-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은 196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조각과 입학을 계기로 파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이응노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이응노는 파리에 정착한 지 햇수로 5년째였으며, 1962년 당대 ‘엥포르멜’ 운동을 주목한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이 이뤄진 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김윤신이 파리에서 유학한 첫해인 1964년은 이응노가 한스 아르퉁(Hans Hartung),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자오우키(趙無極, Zao Wou Ki), 장다이첸(張大千) 등 작가, 평론가, 철학자 등의 후원 아래 파리 시립 체르누스키 미술관에 파리 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한 해이기도 하다.
2024년은 1964년 김윤신과 이응노가 파리에서 만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1984년 김윤신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오롯이 자신만의 창작에 매진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응노미술관은 이들 두 예술가의 조우와 김윤신 작가가 먼 타향에서 이룩한 창조적 열정과 그 작품 세계에 주목하여 회화와 조각 40여 점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국내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김윤신 작가의 파리 유학 시기 초기 작품과 아르헨티나의 작품 대다수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1964년 두 예술가의 만남은 서로에게 영감이 되었다. 이응노는 김윤신에게 “내가 조각을 하고 싶은데, 네가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라며, 김윤신에게 나뭇조각을 깎고 다듬는 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김윤신은 이응노의 집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며 약 4년 동안 교류를 이어갔다. 이응노와 김윤신의 짧은 만남은 이응노가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며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응노와 김윤신의 예술이 맞닿은 지점은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조각의 외형적인 유사성 너머에 있다.
이응노와 김윤신은 모두 조각과 회화라는 매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예술의 갈래로 여겼다. 오히려 평면과 입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실험 속에서 각각의 매체가 지닌 한계를 돌파하려는 유연한 태도로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이는 갓 파리에 유학 온 학생이었던 김윤신과 그 당시 주류 미술계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던 이응노의 교류가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 각자 동등한 예술가의 위치에서 이뤄졌던 사실에서도 미뤄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1984년 김윤신은 겨울방학 중 조카가 사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이후 남미의 풍요로움과 다채로운 천연자원에 매료되어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간 김윤신은 자연주의에 기반한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예술 언어를 구축했다.
김윤신은 자신의 예술세계의 근간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동양철학으로 설명한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합이)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며(합일),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분이) 각각 또 다른 하나가 된다(분일)는 것인데, 작가는 조각의 과정 또한 나무에 자신의 정신을 더하고(합), 공간을 나누어 가며(분), 온전한 하나(예술작품)가 되는 과정으로 본다.” 자연과 내가 하나로 융합되고, 예술가가 자연을 완전히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되어 다시 독자적인 예술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김윤신의 예술은 이응노 예술의 근원을 이루는 ‘자연적 추상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김윤신이 자연적 추상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구축한 시각언어를 생애 연대기별로 주목하고자 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문화의 위치’란 자아 대 타자, 제1세계 대 제3세계 같은 이분법 틀을 넘어 양가성을 띠는 ‘제3의 공간’에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서구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한 두 작가의 교류, 그리고 김윤신이 아르헨티나에서 이룩한 창작의 세계는 무수한 편견과 틀 너머에 존재하는 한국 문화의 양가성과 역동적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