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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교체기간에는 미술관이 휴관이므로 관람이 불가합니다.
고암 이응노의 삶과 예술은 굴곡진 20세기 한국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한다. 서양문명과의 충돌로 시작된 한국의 20세기는 서구화·현대화·세계화라는 지상과제 아래 숨 가쁘게 이어졌고 이 격변의 과정은 이응노의 작품에 그대로 아로새겨졌다. 1904년에 태어난 이응노는 조선시대 말기 문인화의 전통을 간직한 사군자에서 자신의 화업을 출발했다. 그러나 조선보다 먼저 서양미술을 수용하면서 변모를 거듭한 일본회화가 점차 조선 미술계에 영향력을 넓혔다. 시대의 변화에 자극을 받은 이응노는 1936년 일본으로 떠나며 새로운 미술을 공부하고자 했다. 후에 한 프랑스 평론가가 이응노를 가리켜 “영원히 폭발하는 화산”이라고 했듯이, 변화를 향한 이응노의 질주는 이때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이응노는 서양 모더니즘에 눈을 떴다. 그가 새롭게 발견한 미술의 세계는 ‘사생’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인 표현 외에 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등 다양했다. 그리고 이응노는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그 풍경을 그려내는 또 다른 방법들을 익힐 수 있었다.
1940년대 이응노가 접한 새로운 서양미술사조 가운데에는 ‘추상’도 있었다. 그는 이 서양의 낯선 언어를 동아시아 전통 안에서 재해석하고 재맥락화했다. ‘추상’에 대한 이응노의 해석은 ‘반추상’, ‘사의적 추상’ 그리고 ‘서예적 추상’ 등과 같이 시대별로 다른 작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이응노의 추상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동아시아의 서화일치론, 곧 ‘서예와 회화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동일한 장르’라는 전통미학을 서양의 추상범주에서 재정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예, 그리고 문자는 이응노 추상의 핵심이다. 2025년 이응노미술관의 ‘이응노, 문자로 엮은 추상’ 전시는 이렇듯 문자추상을 중심으로 이응노 추상의 여정을 뒤따라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추상’이 이응노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 그가 꿈꾸어온 이상적인 회화에 도달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