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Project
보이지 않는 세계에 말 걸기, 기생하기
김복수 (충남도립미술관 TF팀 학예사)
전시장에 놓인 임승균의 작업을 보고, 듣다 보면 늘 드는 개인적인 ‘삘’과 ‘독해’는 이렇다. 임승균은 지도 밖의 여행자처럼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어떤 낯선 길을 찾아 나선 유목자 같다는 것이다. 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어떤 낯선 바깥은 임승균에게 작업의 모든 매혹적인 대상이다. 더 들어가 보자. 그의 작업은 무심히 얻은 사물에 덤덤하고 힘 빠진 위트를 붙여 눈에 불을 켠 관람자에 무심히 건네기도 하고, 또 어떤 작업은 시간적 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것처럼 거창한 상징적 물음표를 숨겨놓아 의미의 관계를 뒤흔든다. 뭔가 협잡해 보이거나 문맥의 이질감을 촉발한다. 이처럼 임승균의 대부분의 작업들은 아주 익숙한 사물들이고 풍경이지만 보는 이들의 재현적 시각을 단절시켜 새로운 접속을 초래하거나 의미를 분탕질시킨다. 연과 연 사이는 길게 늘어져 있거나 끊어져 있고 때론 극단적으로 함축되어 예측하지 못한 의미의 바깥을 들여다보게 한다. 더 심각하게 얘기하자면 사생아적이고 난해하다라는 것이다. 자칫 작업의 큰 문맥을 놓치게 되면 작업 심한 이미지의 단절로 인해 해석의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에 늘 그의 단절된 의도를 따라 그처럼 생각해야 하는 불편함을 주는 작가/작업이지만 보는 이의 개입/침입을 열어두어 작업을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그의 바깥 탐험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그가 이처럼 경계의 심한 단절을 가하면서도 평범한 일상과 풍경을 마주하는 생각을 뒤집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케치 같은 이 짧은 글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기는 어렵지만 결론을 일부 선취하자면 시각의 변신/변태적인 초래와 접속만이 삶/예술이 정박되지 않음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이에 임승균의 이런 다양한 작업들은 관찰하며 관통하는 언표를 떠올려보면 늘 어딘가에 접속하는 이질적인 변화에 있다. 작품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채취하거나 길어 올린 어떤 사물, 사태, 풍경에 끊임없이 사용/변용하며 변신적인 행위를 보여 준다. 사물의 날 것을 그대로 작업으로 변태하거나 또 풍경을 보여 줄 때도 그 유목적인 접속이 작업에 드러난다.
기실 다양한 그의 작업을 일별하여 보면, 어떤 발견을 즉흥적인 퍼포먼스로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작업들은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하여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거나 섬세한 신체성이 축적된 작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작업의 재료에 따라 웃음이 연발되는 익살스러운 설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소소하거나 하찮은 사태에 말을 걸어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나요?’를 은밀하게 속삭여 준다. 하지만 이 임승균이 말하는 모든 상황의 전후를 파악해야만 보이는 연극적인 접속, 혹은, 신체적인 궤적을 이해한다면 그의 유목적 메뉴들을 즐길 수 있다.
이에 이번 아트랩에 설치될 작업 역시 유목적인 변태/변신적 감각이 드러난 작업이다. 그간 이응노미술관에서 전시공간으로 쓰지 않았던 중정 공간을 작품이 놓일 공간으로 선택하면서 새로운 이미지의 생성과 모종의 공간 반전을 소재로 삼았다. 이번 작업은 프랙탈 구조의 프레임에 여러 가지 색들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비치는 필름을 붙인 설치작업이다. 이는 단순한 구조의 반복적 복잡성의 의미에서 프랙탈이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정박하지 않는 자신의 유사 구조에 대한 반복적 은유일 수도 있겠다. 이 작업은 중정 안의 공간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반사되어 프레임 부분과 감추어진 부분이 동시적으로 감각되어 시각적 이미지를 증폭시킨다. 프레임과 필름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빛의 이미지는 사이버틱한 기하학적인 물체로 보이게 하여 이응노미술관에서의 낯선 접속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보여 진다. 이 역시 그의 방랑적 연출이며 유목적인 작업이다. 작품을 명료한 시간적 공간적 범주로 이해시키기보다 뜬금없는 마주침을 유발하고 우발적인 만남을 촉발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다. 이 모종의 공간 반전 프로젝트는 그리 효과적일 수는 없겠지만 창의적 접속효과를 창출하는 의미에서 기획적이다.
이런 작업은 재현적 형태로 유사하지 않지만 그의 유목적인 성향이 반영된 상징적인 작업인 예로 몇 가지 작품을 보자. 그의 대표적인 작업 <인스톨레이션, 2017>이다. 이 작업은 긴 철봉을 웅덩이에 던져 진흙 바닥에 꽂히게 만든 설치작업이다. 웅덩이에 자발적으로 철봉을 던지며 꽂는 행위와 비자발적으로 쓰러진 형상이 늘 자발적이지 않은 다층적 힘의 역설을 보여 준다. 그저 철봉을 힘껏 던져 꽂았다 쓰러진 행위가 어쩌면 거대 풍경에 흡수되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으로 그에게 깨달음의 작업이었을 것이다. 또 밥에 쌀을 위태롭게 이어붙인 작업과 페인트 통에 서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 작업 <Test 12>도 그런 깨달음과 무모함에 말을 거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은 작업이다. 또 다른 작업인 짧은 여행에 대한 소고와 시적인 행간을 닮은 계곡의 돌에 웅크리고 있는 퍼포먼스와 잘린 유리판으로 눌려놓은 베개와 물에 젖은 폐지 상자 묶음 등 불연속적이며 각기 다른 말 걸기의 일관의 작업이자 궁극적인 목적론에 미끄러지며 모종의 균열을 가하는 작업으로 떠올려 준다. 이렇게 배치한 분절들은 고유한 의미와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임승균식의 질문으로 그가 세상을 미시적으로 관찰해 보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업들을 살펴보자. 바다에 떠다니는 부표를 전시장에 걸고 쩍 갈라진 마른땅을 달래듯 생명체 같은 조형물로 위로하며, 물의 미세한 변화된 수치를 기록해 걸어뒀던 작업들은 좀 더 자연적인 시각과 접속한 결과물들이다. 이는 최근 팬데믹과 가속화된 기후변화로 인하여 자연/일상 속에서 리서치한 작업들을 더 폭넓게 선보였는데, 그가 늘 고수해 왔던 방랑하며 예술 찾기 프로젝트들로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내외부가 따로 없는 자연과 일상의 아이러니한 유형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자신이 본 인상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간의 작업적 방법론에서 확장된 프로젝트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일상의 발견과 신체적 수행의 과정을 통해 더 다른 미시적 차원의 자연적 세계와 교감하려는 시도이다. 의도하지 않은 자연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또 다른 수행성으로 번역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이미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대상이 예술적 차원으로 승격되며 자신이 동화되는 발견을 통해 사물과 사태와 자연에 소소한 말 걸기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임승균은 깨닫고 전달하는 이전의 리서치 작업과 자연을 다루는 작업은 큰 문맥으로서 결을 같이 한다.
이렇게 임승균의 작업은 일상을 배회하면서 얻은 사소한 존재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서, 적극적으로 우연과 직관을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작가이다. 그가 우리에게 선보이는 뜻밖의 ‘우발성’은 오히려 ‘사유를 강제하도록’ 하는, 당차고 참신한, 뜻밖의 침입을 자연스럽게 전이시킨다. 그가 늘어놓은 이 뜻밖의 전치가 우리의 삶과 생각에서 소외되었던, 그래서 잘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어떤 풍경과 오브제를 관람자의 눈과 생각에 침입시켜 의식의 전복을 촉발하는 것이다.
이런 또 다른 뜻밖의 참신한 전치는 최근 천안시립미술관에서 설치한 <도시 프로젝트 2022> 설치작업에서 이어진다. 프레임에 설치된 블라인드와 불현듯이 이어지는 화면의 문자들, 벽에 비스듬하게 세워지거나 누워있는 뭉개진 그래픽 간판 등 누구에게나 포착되지 않을 나뒹굴어 다니는 창밖의 풍경들은 고스란히 관람자의 시각을 침입한다. 임승균은 도시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대한 층층의 의미심장한 의미들은 접어두고, 도시란 매일 반짝거리며 사라지며 뭉개지는 무수한 집합체가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무심히 드러낸다. 이는 그저 도시에 있는 풍경을 포착하면서도 도시와 떨어진 애잔한 인상들에 말을 걸어주는 것이다. 이는 예사로운 주변 일상을 예사롭게 놓아버리지 않는 비자발적인 감성의 작업으로서 그저 응시하는 모든 것이 작업으로 이어진 결과이다. 이러한 작업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가 작업을 이끌어내는 ‘우발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부대효과들이다.
이렇게 그가 세상을 산책하듯 유목적인 태도가 작업의 특징이라면 이 특이성은 그가 사건을 접속하는 감각으로도 재현된다. 그의 리서치 작업의 대부분은 자연과 일상의 소소함에 접속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다루어 왔지만 역사적 사건과 결부된 작업도 진행해 왔다. 그의 주특기인 과학적인 방법을 차용한 지질조사 작업 <인공지층샘플, 2017>은 대전의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된 8곳의 학살사건 장소에서 토양을 수집하여 지층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은 지울 수 없이 그저 쌓임을 인공적인 지층을 통해 시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업 <잉여기와 샘플, 2021> 역시 삼국시대의 흔적으로 온전한 형태로 박물관에 전시되기 어려운 기와, 토기 조각들을 3D 스캐닝하여 관람하는 이들에게 다시 시간을 추적하도록 열어놓는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완성된 의미나 상징화된 가치를 뒤집는, 그저 시각의 다른 흐름을 발견하게 하는 상황을 열어놓음으로써 패턴화된 역사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이번 아트랩에서의 전시를 보자. 이번 아트랩에서 선보이는 <무제 2022> 작업 역시 위에서 제기한 작업과 상황이 무관하지 않음을 추가한다. 최근 그가 새로운 재료들을 작업에서 보여 주면서 공간과 풍경의 요소를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는데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미술관 중정에 설치되는 설치작업은 반복적인 기하학적 이미지를 통하여 풍경 보기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전략이며, 사각형의 프레임에 붙인 특수 필름의 시각적 방해/접속으로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 공간에 낯선 말 걸기를 시도하려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처럼 새로운 말 걸기를 하는 것은 세상의 빈 공간에 그간 만나지 않던 분절된 의미를 채워 넣는 제스츄어이며 작업들이다. 가끔 그의 작업에서 뜬금없는 맥락과 띄엄띄엄 오는 맥락에서 오독이 되긴 하지만 그의 방랑자적 작업들은 우리를 새로운 바라보기로 인도한다. 또 그는 늘 타자로서 자연이나 일상, 사태를 긍정으로 응시하며 우리가 늘 아무것도 아닌 타자와 밀접하고 섬세하게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공표한다. 임승균은 이렇게 세상에 기생하기를 자처하며 미시적인 세상에 말을 걸고 고정된 자리에 정주하지 않으려는 유목자적인 작가로 남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