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Project
조화와 긴장, 그 완결성을 향해 움직이는 공간
류동현 페도라 프레스 편집장, 미술비평
얼마 전 SNS의 짧은 동영상들을 둘러보다가 흥미로운 영상 하나를 접했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인 듯 한데, 등장 패널 중 한 명이 자신은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열린 결말이 아닌 일종의 완결된 결말로 끝맺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웃음 포인트는 이 이야기를 열린 결말을 주로 보여주는 영화감독들의 앞에서 했다는 점이지만. 이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영화의 내용적 완결성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 미술의 시각적 완결성에 대한 논의가 떠올랐다. 결국 미술사의 시작은 이러한 시각적 완결성에 대한 담론이지 않은가.
양승원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은 바로 그 ‘시각적 완결성’이었다. 두꺼운 선과 얇은 선, 원과 삼각형, 사각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상과 흰색과 분홍색, 보라색, 녹색 등 강렬한 원색이 다채로운 결합된 추상회화다. 수많은 요소가 결합되어 있지만 정밀하게 직조된 화면의 구성을 통해 캔버스 속에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동시대에 많이 보이는 형식 추상 작업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화면 속 연필선이 주는 자유분방한 간섭 등은 젊은 작가만의 경쾌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대전 이응로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아트랩대전 2023’은 대전 출신이거나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선정해 전시를 개최하는 신진 작가의 등용문 전시의 성격을 띤다. 대전이라는 키워드가 있지만, 지역에 한정하지는 않는다. 국내, 아니 나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작가를 예리한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2023년 6월 13일부터 7월 4일까지 이응로미술관 신수장고 M2 프로젝트룸에서 《공간을 읽는 방법》 전시를 선보이는 양승원 작업을 작업실에서 처음 접하면서 작업에 대한 집요함과 시각적 완결성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시각적 완결성이라는 측면에서 먼저 시지각에 대한 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지각은 간단히 이야기해 시각과 지각을 합한 단어이다.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동한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이러한 주관적인 인식을 통한 바라봄을 통해 예술작품의 완결성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루돌프 아른하임은 『미술과 시지각』(1954)에서 균형, 형태, 성장, 공간, 빛, 색, 운동, 긴장, 표현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미술작품을 분석한다. 그리고 왜 우리가 미술 속에서 시각적 완결성을 찾는지(혹은 찾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양승원 또한 이 시지각이 자신의 작업에서 꽤 중요한 요소임을 작업노트를 통해 밝힌다.
“우리는 ‘시각’과 ‘지각’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시지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각과 지각은 떼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 즉 ‘본다’는 것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생리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본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기억을 동원하여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보는 방식은 우리가 경험한 지식과 믿음에 의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학습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는 것은 특정한 관념이나 선입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굉장히 주관적인 행위이다.”
이렇듯 양승원은 시지각의 측면에서 형식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색과 형태, 균형과 비례, 조화과 긴장 등을 통해 캔버스를 바라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접하도록 한다(이것이 비록 안정적이든 불안정하든). 작가에게 형식적인 문제는 단순히 화면 속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작가의 작업실은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단정했다. 이를 보면서 작가의 형식에 대한 관심이 일종의 삶 속의 태도와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초기작인 <조화(Harmony)>(2017)나 <공간_잠재적인(Space_Potential)>(2018) 시리즈는 작가의 관심사가 처음부터 형식과 화면의 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나가는 작가의 여정이다. <조화>가 전형적인 색과 형태의 구성(콤포지션)의 문제라고 하면, <공간_잠재적인>은 최근 양승원의 작업을 파악하기에 흥미로운 단초를 제공한다. 비정형적인 선과 면, 색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면은 공간에 대한 관심과 확장으로 연결된다. 화면은 흡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위성사진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하다. 과거 이선영 평론가가 양승원의 작업을 도시 풍경적 측면에서 분석한 것처럼, 작가가 이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는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나 차분한 농촌 풍경 등을 연상시킨다. 삶의 태도에서 확장된 세계에 대한 관심을 형식적 구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작업 방식 또한 작가의 태도를 일관성 있게 드러낸다. 캔버스는 얼핏 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함 때문에 라인 테이프 등의 매체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작가가 물감과 붓으로 그려낸 것이다. 한 치의 삐침도 없는 깔끔한 선과 면들은 구성의 완결뿐만 아니라 화면에 또다른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오롯이 화면을 통해 관람객에게 직관적인 흥미로움으로 다가온다. 작가의 형식에 대한 태도는 이러한 작업 과정을 거쳐 신체성이 가미된다. 이른바 물아일체처럼, 이러한 과정은 작가와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 된다.
이번에 열리는 《공간을 읽는 방법》 전시는 과거의 작업과 함께 작가의 최근 작업 동향을 살펴볼 수 있다. <운동하는 감각>(2020) 시리즈, <A motion based landscape>(2020~2021) 시리즈, <The space like liquid>(2022) 시리즈 등의 작업은 흰색의 배경으로 다양한 원색의 기하학적 형상들이 무질서한 듯, 그러나 조화와 긴장을 드러낸다. 화면은 시리즈 순으로 좀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들이 개입되지만, 오히려 조화로운 완결성을 느낄 수 있다.
2023년에 제작한 최근작 <Greenish>(2023), <Moving Space_흩트리기 그리고 정렬하기>(2023)은 하나의 캔버스를 넘어 몇 개의 캔버스를 이어붙이는 등 화면 속에서 또다른 화면을 중첩하고 그 레이어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사각형의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비정형의 공간 속에서 조화와 긴장의 움직임이 드러난다. 색 또한 원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으로 레이어를 더했다.
이렇듯 양승원은 형식을 통한 시각적 완결성을 넘어서 3차원 공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위에서 언급한 세계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유동적 공간(Moving Space)’을 끌어들인다. 단순히 캔버스의 작업뿐만 아니라 전시공간으로 확장한 작가의 작업은 이른바 전시의 3요소인 ‘공간’, ‘회화’, ‘관람자’를 모두 작업의 주체로 놓는다. 전시장의 벽에 단순히 사각형의 평면 작업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와 비정형의 캔버스가 전시장 곳곳을 채운다. 오브제 위에 평면 작업이 설치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지각을 통한 시각적 완결성은 더욱 자의적이고 자유롭게 관람자의 몫으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최초의 이미지들이 변형되고 편집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Moving Space(유동적 공간)’, 나의 회화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특정 공간에 대한 소유와 정착보다는 이동과 유목의 의미로 공간에 대해 사유한다. 하나의 공간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지속되고 그 곳을 지키고 있는듯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고 결국엔 소멸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공간은 물리적인 개념보다 심리적인 개념, 정착보다는 이동과 변화의 의미가 더 크다.”라고 설명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바로 과거 회화 작업이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작업한 <The space like liquid no.1>(2023)이다. 불변의 요소들이 아닌 기하학적 형상과 색들이 화면 속에서 각자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칸딘스키는 1910년 출간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대립과 모순-이 모든 것이 우리의 하모니이다. 이 하모니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구도는 색채와 소묘적 형태를 통합하는 것인데, 이러한 통합은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또 내적 필연성에 의하여 도출되며, 이 필연성에 의해서 생겨나는 공통적인 생명에서 소위 그림이라고 하는 전체를 형성시킨다”라고 이야기했다.1) 결국 작가의 작업은 칸딘스키가 이야기했듯이 작가 본인의 ‘내적 필연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 작가가 가지고 있는 내적 태도도 큰 역할을 한다. 양승원 작업은 형식에 대한 관심, 시각적 완결성을 찾고 싶은 욕망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 관심은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된다. 조화와 긴장이 만들어낸 완결성과 그 확장된 세계가 어디로 옮겨갈지 양승원의 작업을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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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실리 칸딘스키 지음, 권영필 역,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열화당, 1979,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