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UNGNO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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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Project

2023 아트랩대전 양태훈

양태훈의 몸으로 빚는 일련의 작업들

 

/ 박순영

 

양태훈작가는 설치미술, 퍼포먼스, 회화, 영상 등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이번 개인전 <상상소>는 퍼포먼스로서 <연속>, 조각으로 <에그맨> 시리즈, 회화로서 모로코에서 그린 그림들로 이루어진다. 전시의 주제인 상상소는 작가의 세계관과 예술가로서의 입장을 반영한다. ‘상상은 이미지화하는 행위이고 ()’ 는 흙을 빚다는 의미의 한자로 조각과 소조를 아우르는 조소(彫塑)’에서 차용하였다. 작가는 모든 사물이 그림이나 조소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소재의 선택과 이를 작품화하는 데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표현방식은 다양해지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재(모티브)가 될 수 있으며, 버려진 것조차도 소재(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양태훈작가는 특별한 주제나 개념을 갖고서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체를 선택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갖고 있다. 우선, 즉흥적이고 비계획적 작업으로서 파운드오브제(found object)’로 만든 설치미술과 재현의 대상이 없고 예측 불가능한 이미지가 생성되는 드로잉을 든다. 반면, 어느 정도 계획을 갖고 착수하는 작업을 할 때 조각과 페인팅으로 한다. 조각은 구체적인 구상을 갖고서 수행하여 완성에 따른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고, 페인팅은 소재의 선택은 우연적이지만 재현인 만큼 구체성을 띤다. 마지막으로, 계획과 비계획을 적절히 섞은 작업으로 퍼포먼스를 행한다. 일상에서 경험한 바와 사유한 내용을 몸을 도구삼아 표현해 내는데, 공간과 시간에 적합한 도구와 구성, 그리고 행위를 설계한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행해지는 순간에는 우연한 상황들이 연출될 수 있도록 느슨한 계획방식을 선택한다. 이러한 구분 하에 전시되는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우선, 페인팅연작으로 <모로코1>,<모로코2>는 지난해 다녀온 모로코의 사막에 위치한 레지던시 카페티사드마인에서 진행한 작업들이다. <모로코1>은 종이에 과슈로 그린 126점의 그림을 노끈에 집게로 달아놓는 방식으로 설치하고, <모로코2>는 보드캔버스에 과슈로 그린 21점의 그림을 벽에 거치하듯 설치하고 앞에 모로코의 모레와 동물뼈로 사막의 모레언덕을 연출한다. 작가는 모로코를 옮겨와 보자는 생각으로 모로코에서의 개인 기록화를 전시하고자 했다. 그림에는 모로코에서 맞닥뜨린 일련의 소재들로서 건물들, 줄에 널려있는 빨래, 사방탁자, 사막에서 본 것들, 인근 동네 아이들, 사물들 등을 담고 있다. 드로잉 연작으로 <몽상이몽> 작업들은 영국 유학시절에 제작한 작업으로 재현된 형상은 없고, 붉은 색면과 날카로운 느낌의 검정색 선이 낙서처럼 무질서하게 칠해지고 그어져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절정의 도취상태가 느껴진다. 재현과 비재현, 계획과 비계획의 구분으로 페인팅과 드로잉을 나누는 작가의 방식을 보면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장르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전시 개막 당일 행하는 퍼포먼스 <연속>이 있다. 대략 4~5분 남짓의 시간동안 진행되는 단막극 형식의 퍼포먼스로서 지난 해 개인스튜디오에서 실험적으로 행한 3부작 <검은풍선>, <꼬리>, <인체연소>의 합본이라 할 수 있다. <검은풍선>은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경찰서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장면에 착안하여 헬륨가스와 붉은 안료를 넣은 검은풍선을 머리위에서 터뜨리고, <꼬리>는 둔부에 붉은꼬리를 달고 사각구조에 설치된 물통을 잡아당겨 물을 뒤집어쓰고 달려가다 벽에 세운 메트리스에 부딪혀 넘어지며, <인체연소>는 붉은 원피스를 입고 바닥을 기어와 의자에 놓인 비닐봉지에 불을 붙인다. 초현실적 현상의 하나인 인체연소를 모티브로 한 작업으로서 초월에 대한 작가의 관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언급한 세 작업에서 복장은 제각각이지만 붉은 색을 띤다는 점과 마지막 붉은 여장이 인상적인데, 이는 뒤샹의 에로즈세라비(Eros C'est La Vie)’를 연상하게 하면서 성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힌다. 세 가지 실험적인 행위를 이번 전시의 퍼포먼스인 <연속>에서 연속해서 전개하는데,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은유이자, 자신이 동경하는 초월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퍼포먼스 <연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퍼포먼스는 저에게 일종의 도전입니다. 저 자신을 뛰어넘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를 위한... 그리고 이는 개인적인 놀이 입니다. 그리고 엔트로피의 증가이기도 합니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질서를 무질서로 만들기에 기본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도전과 초월의지를 보이는 작가가 물리학의 용어인 엔트로피에 빗대어서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그의 예술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지난 오월에 있었던 ‘2023 울산현대미술제에서 양태훈작가는 전시 취지에 부합하는 작업으로 자신의 여러 작업방식 중 하나인 파운드오브제 작업을 행했다. 미술제 기간 동안 버려진 사물을 주워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제작한 여러 작품은 거리 곳곳에 설치된 관계로 기간 중에 소실되었다. 파운드오브제는 뒤샹에 의해 레디메이드와 같이 예술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하였기 때문에 양태훈의 작업은 뒤샹작업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한편, 파운드오브제는 일상의 사물을 변용한다는 측면에서 앤디워홀의 유명한 브릴로박스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담긴 예술적 의도는 고전적 미학에 대한 공격이고 워홀은 예술작품의 의미 발생에 외부적 요인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전자는 미술계를 부정하고, 후자는 미술계에 의존적이다. 그러나 일상과 상식의 개념을 전복하여 새로운 의미를 도출함으로써 가치를 부여하고, 더불어 불일치와 부적합을 미의 체계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는 그 업적이 동일하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파운드오브제로 여긴다.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예술의 핵심개념으로 자리하면서 그의 작품에 보조(assisted)나 상호(reciprocal), 수정(rectified) 등의 수식을 붙여 분석할 만큼 파운드에도 다양한 의미 확장을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버려진 사물을 줍는(발견) 것이 될 텐데, 거기서 유용함을 발견한다거나 자신의 감각이나 미의식, 그리고 잠재된 예술 개념의 발견 등의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그러나 작가가 사용하듯 몸을 기성품(레디메이드)으로서 파운드오브제라고 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몸을 관습에 길들여진 사회적인 몸이라는 차원에서 레디메이드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몸을 점점 죽어간다고(유용성을 잃어가는) 여기는 관점에서 버려진 사물로 다루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여장을 한 작가의 행위가 젠더롤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타당하다. 다음, 후자에 대해서는 우선 엔트로피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열역학 법칙의 하나로 에너지변화를 뜻하며, 물질계에서 열의 이동에 따라 감소하는 에너지 변화량을 말한다. 감소하는 에너지의 변화량이 많을수록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이를 파운드오브제에 적용해보면, 버려진 사물이나 죽어가는 몸은 에너지(유용성)가 감소하는 사물이며 그만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일견 동일하다. 또한 어떤 사물이 고유한 기능 대신에 다르게 쓰이거나 차용될 경우도 원래적인 에너지 감소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이다. 한편,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로 표현된다. 열이 감소한 만큼 무질서도는 증가하는 것이다. 이렇듯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몸을 파운드오브제로 보는 작가의 관점에서 관습에 대한 저항과 사회적 규율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작가적 태도를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조각작품으로서 <에그맨> 시리즈와 <삼다리>가 있다. 작품 <삼다리>는 기계적 구조가 거칠게 드러나는 로우테크 범주의 조각이다. 작가는 뭔가 기괴한 몸이 움직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 퍼포먼스와 함께 전시함으로써 인간은 기계보다 나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연속>이 작가의 몸이 행하는 퍼포먼스라면 이 작품은 기계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에그맨>시리즈는 레진과 석고로 만들어진 비교적 형태가 단조로운 삼각뿔이나 원형의 동물캐릭터 인형모양이 연상된다. 두 조각은 작가의 의도와 동기가 다소 명확하고, 레진에 꽃과 닭뼈를 넣어서 주조할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러나 형태가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비정형이며, 신체요소가 제거되어 실제기능이 불가능한 바로 상상소이다. 따라서 여기에도 엔트로피를 적용해 보자면, 에그맨의 인체는 기능을 못하고 유용성이 낮은 만큼 엔트로피가 높기 때문에 사회적 기준에서는 무능하지만 양태훈의 예술세계에서는 유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에그맨이나 삼다리또한 관습이나 어떤 분석을 거부하는 양태훈의 예술가적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태훈작가는 뒤샹과 워홀의 태도와 동일하게 관습에 저항하면서 예술가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이론적 분석에 따르는 서사구조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재기발랄하게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기성품이자 파운드오브제로서 자신의 몸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흙을 빚고, 버려진 것들을 조합하면서 형태를 드러내며 때론 몸자체로서 뛰어다니거나 말하고 낮은 포복으로 기면서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기준과 구분에 균열을 일으키며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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